레슨 인 케미스트리 독서 후기
보니 가머스 장편 소설
총 2권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정말 순식간에 읽은 소설이었다.
배경은 현대는 아니고, 1960년대쯤 되는 듯하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능력 있는 화학자이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이에 굴하지 않는 사람이다. 회사에서도 능력 있는 인재였으나, 억울하게 쫓겨나고 우연히 요리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맡게 된다. 방청객들과의 대화 중 매우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아주 상세한 진단입니다, 필리스 부인. 어느 의학 분야에서 일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여자는 당황했다.
"아, 아뇨, 저는 의사가 아녜요. 그냥 가정주부예요.”
“세상에 그냥 가정주부란 없습니다. 가정주부 일 말고 또 무엇을 하시죠?”
“아무것도 안 해요. 취미가 좀 있지만요. 저는 의학 잡지를 즐겨봐요.”
“흥미롭군요. 그리고 또 뭘 하시죠?”
“바느질요.”
“옷을 만드시나요?”
“아뇨. 정확히 말하자면 상처를 꿰매요.”
“봉합을 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아들이 다섯이거든요. 애들이 늘 몸에 상처를 달고 와서요.”
“하지만 부인께서 다섯 아이들만큼 어렸을 때는 뭐가 되고 싶으셨는지-“
“사랑받는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고 싶었어요.”
“아뇨. 진지하게-“
“개흉 심장 수술을 하는 외과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녀는 저도 모르게 불쑥 말했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2권 83페이지
그냥 가정주부란 없다. 나는 우리의 어머니가 어렸을 적 꿈이 무엇인지 여쭤본 적이 있었나?
엄마는 우리의 육아와 가사를 위해 꿈을 포기하시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저는 '우리'를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로스 씨. 우리의 실수 말이에요.
자연은 인간보다 더 높은 지적 영역에서 작용합니다. 우리는 더 배우고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문을 열어젖혀야 합니다.
명석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성차별과 인종차별이라는 무식한 편견 때문에 과학 연구를 못 하고 있어요.
저는 그 점에 무척 분노하고, 당신도 마땅히 분노해야 해요.
과학은 기아와 질병, 멸종 등 큰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기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문화적 관념으로 일부러 다른 이의 앞길을 막는 자들은 정직할 뿐 아니라 참으로 게으른 인간들이에요."
-레슨 인 케미스트리 2권 192페이지, 엘리자베스의 대사 중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우리는 화학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레슨 인 케미스트리 2권 236페이지, 엘리자베스의 대사 중
엘리자베스는 성차별을 당한 사람이기 때문에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단지 그뿐만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무의미한 차별, 그리고 그에 굴복하지 않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너무 사회에 깊숙이 침범한 차별은, 이게 차별인지 아닌지조차 헷갈리게 만든다.
그럴 때는 성별, 인종, 경제적 수준과 같은 점이 완전히 달랐다면 상황이 바뀌었을지를 가정해 보면 쉬워진다.
내가 다른 성별이었다면, 내가 다른 인종이었다면, 내가 다른 경제적 수준에 있었다면, 그래도 이런 말을 듣고, 이런 대접을 받았을까?
레슨 인 케미스트리의 멋진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읽고 "나도 차별에 굴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야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주 옛날 시점의 이야기지만, 현재에도 아직 진행 중인 차별들이 많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그렇다고 남성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책도 아니었다. 차별을 하지 않고, 엘리자베스를 도와주는 남성들도 분명히 함께 나오고 있으니까.
진정한 성평등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해주는 책을 읽고 싶고, 재미있는 소설로 읽고 싶다면 '레슨 인 케미스트리'를 강력 추천한다.